본문 바로가기

그림이야기

거문도편지 그림

그림 김상민

 

 

 한창훈의 거문도 편지
 아빠와 아들

 동식이는 지난해 거문초등학교의 유일한 입학생이었다. 일 년 동안 중간고사 기말고사 일등을 했다. 뒤에서도 일등이라고 동식이 아빠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딸랑 하나 있는 것은 뒤에서부터 세는 법 없으니 무시되었다. 당연히 올해 이 학년 시험도 일등은 맡아놓은 상태이다.
 제 엄마가 동식이를 가졌을 때 돌아가신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 아이 이름에 밥식(食)을 넣으라고 일렀다. 할머니의 현몽은 늘 좋은 결과가 있었기에 이름이 동식이가 되었다. 순전히 이름 탓에 이 조그마한 친구가 한 끼에 두 그릇씩 먹어댄다. 어떤 때는 세 그릇도 먹는다. 먹는 게 엉뚱한 데로 가는 법은 없어 힘도 장사이다. 거문도 은빛바다축제 할 때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를 한다. 그때 동식이는 커다란 방어와 우럭을 정부미 마대자루로 반 넘게 잡아왔다.
 동식이 엄마는 식당을 하고 있다. 그래서 동식이의 미래 희망도 엄마의 식당을 물려받는 것이다. 계란부침은 이미 수준급이라서 제 아빠와 내가 술을 마시면 안주로 부쳐오기도 하고 관광객들에게 우리 집 맛있어요, 호객도 한다. 동식이 아빠는 성장기때 기계체조를 해서 어깨가 과하게 벌어져 있다. 육중한 상체는 그냥 두고 좌우 팔만 흔들며 걷는 것이 기본 폼이다. 제 아빠가 그렇게 걷고 있으면 종종 동식이가 뒤에서 똑같은 자세로 흉내 내며 따라가곤 한다. 그것을 본 주민들은 요즘 유행하는 개콘 코너처럼 ‘아빠와 아들’을 외친다.
 얼마 전에 우리 셋이서 가두리양식장으로 전갱이 낚시를 갔다. 물고기 키우는 칸 옆에 배를 붙이고 했다. 문제는 동식이가 똥이 마려워버린 것이다. 화장실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 가두리 사무실이 있는 널따란 바지 위에 있었다. 동식이 아빠는 아들 손을 잡고 흔들리는 양식장 이음새를 걸어 끝까지 갔다. 그곳에서 기다란 널빤지를 타고 건너가야 화장실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가두리에서 키우는 진돗개가 맞은편에서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꼬리를 전혀 흔들지 않은 채. 정말로 큰 문제는 동식이 아빠가 작년에 그 개한테 다리를 물렸다는 것이다. 아빠와 아들은 서로를 붙든 채 개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개도 그랬다.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널빤지를 사이에 둔 대치형국은 한동안 이어졌다. 넓은 어깨도, 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부자(父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사진을 찍어놓지 못한 게 서운할 정도였다

'그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포스캔들 인문학등산  (0) 2013.03.25
요즘가수들  (0) 2013.03.22
정동에세이 고양이그림  (0) 2013.03.07
체코-줄인형  (0) 2013.02.19
[펌] 창의력을 유지하는 29가지 방법  (0) 2013.02.14